인도와 파키스탄은 70년 전만 해도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둘로 갈라져 종교적 이유와 영토문제로 분쟁이 많이 일어납니다.
종교문제와 카슈미르 영토 문제
■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는 두 나라로 갈라졌습니다. 힌두교가 많은 지역은 인도,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은 파키스탄이 되었습니다. 이슬람 주민이 많은 카슈미르는 당연히 파키스탄에 귀속될 예 정이 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카슈미르 지도자였던 하리 싱은 힌두교도였기 때문에 파키스탄 귀속을 망설였습니다.
■ 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그러자 카슈미르의 이슬람교도 주민들이 파키스탄 무장세력의 도움을 받아 폭동을 일으켰고, 하리 싱은 인도의 힘을 빌려 이들을 물리치면서 그 대가로 인도에 통치권을 넘겼습니다. 이때 일어난 전쟁인 1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입니다.
양국 간의 무력 충돌은 유엔의 중재로 휴전하였고 이때 정전선에 의해 카슈미르가 분할되었습니다.
■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1965년에 다시 카슈미르 지방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인도 서부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무력 충돌로 발전하면서 두 번째 전행이 일어났으며 이것을 2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라고 합니다. 다음 해인 1966년 소련의 중재로 휴전을 합니다.
■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3차 전쟁은 파키스탄 내부 문제로 시작이 됩니다. 뱅골 지방에 세워진 동파키스탄과 정치적 실권을 가진 서파키스탄 사이의 문제입니다. 서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을 정치적으로 식민지화하려고 했으며 1970년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동파키스탄인들이 서파키스탄에 분노하면서 독립운동을 벌입니다. 그래서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진압을 시작하면서 동파키스탄인들이 인도에 유입되나 여력이 없었던 인도가 동파키스탄 독립에 개입하면서 1971년 전면전이 일어납니다. 인도의 압도적 인원으로 전쟁에 이기면서 동파키스탄은 1971년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합니다.
■ 앙숙관계
파키스탄과 인도는 아직까지도 앙숙관계로 지내고 있으며 중국과 파키스탄 동시에 국경에 맞닿아 있는 인도는 중국의 핵실험 성공으로 핵을 개발하여 6번째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이에 파키스탄 핵 개발을 해 7번째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핵을 보유한 3개 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항상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최근에는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 국경지역 인도가 한국의 자주포 K-9를 배치함으로써 한국 무기와 중국 무기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근래의 분쟁지역 대부분의 영국 등 제국주의 시대의 결과입니다. 미얀마 쿠데타도 결국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시작한 소수민족 문제이고 인도 파키스탄은 종교문제와 영토 문제가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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