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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사피엔스로 살기/그 남자의 궁금증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 위안부는 매춘부 논문 논란과 박유하 교수의 두둔 논란

by 생독TV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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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 위안부는 매춘부  논문 논란과 박유하 교수의 두둔 논란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한 논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논문을 '태평양전쟁 당시 성 계약'입니다. 지난 2월 1일 일본의 우파매체인 일본 산케이 신문이 램지어 ㄱ수의 논문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이 논문은 학술지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앤드 이코노믹스' 3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논문의 내용은 위안부 여성들이 일본군과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었으며 일본 정부가 아니라 여성들을 속인 모집업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습니다. 18세까지 일본의 미야자키에서 살았으며 그로 인해 일본어가 아주 유창하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도쿄대에서 연구활동을 한 경력이 있으며, 도쿄대, 와세다대학, 히토쓰바시대학, 도호쿠대학에서 강의를 한 이력도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일본 경제와 사회를 홍보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 6가지 중 세 번째인 '욱일중수장'을 받았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공식 직함은 '미쓰 비시 일본 법학 교수'(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다. 이 직함은 지난 1972년 미쓰비시가 하버드 법대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생긴 직함으로 알려졌다. 도쿄대 법대와 게이오대 법대의 자문위원회에도 소속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 역사학˙법률학 교수들과 램지어교수의 제자들이 반박을 하며 하버드대 교내 신문인 클림슨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지낸 카터 에커트 한국역사학 교수는 "램지어의 논문은 비참할 정도로 실증적으로,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논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서 에커트 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인 일본의 식민주의와 군국주의 맥락을 경시했으며 일제강점기 때의 정치 경제적 맥락은 배제한 채 위안부 사건에만 초점을 두고 주장을 펼 쳤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성적 존엄성은 무시됐고,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문제로 축소됐다고 했습니다. 에커트 교수는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앤드루 고든 역사학 교수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비판하는 별도의 반박문도 준비하고 있으며 미전역의 800여 명의 법학도도 이미 연명에 서명했다고 합니다. 

 

카터 에커트 교수

한편 램지어 교수는 2월 3일에 펜앤드마이크와 전화 인터뷰를 해서 "한국인들이 자신의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 MBC 뉴스에서는 자신을 두고 노랑머리 일본인이라는 인종차별적 언사까지 썼다."라고 주장했습니다.(역시난 펜앤드마이크는 어느 나라 언론일까요.)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 "위안부가 계약서를 썼다는 역사적 디테일은 맞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을 옹호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 우한에 위치한 위안소에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비를 세웠다는 점을 들어 일본군을 두둔하는 듯한 말도 했다. 박 교수는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 물론 강제로 끌어와 강제노동을 시킨 노예를 위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공양비는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유하 교수 : 와세다 대학교 일문과 박사, 세종대 일어일문학 교수

 

이에 대해 같은 대학교의 호사카 유지 교수는 공양비가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바 교수 말에 " 일본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결론으로 보여진다."고 반박했습니다. 

 

일본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지 않으면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고유 신앙 '어령 신앙'이 있으며 거의 모든 일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종교 아닌 종교여서 상대에게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러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경우, 영혼의 복수가 무서워 반성의 의미에서 위령비를 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임진왜란 때 전리품으로 조선 군인의 귀와 코를 베어 본국에 보내 '이령(귀무덤)을 만들었는데 역시 그 앞에도 공양탑을 세웠다고 합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말을 정리하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의 위령탑과 공양탑이 아닌 영혼의 복수가 무서워 위령탑을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잘못은 있는데 죄가 없다라고 했던 어느 판사의 판결문이 생각납니다.  마크 램지어 교수나 박유하 교수나 출신은 못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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